1) 병원 및 연구: 제가 다녀온 St. Mark Hospital (SMH) 은 런던 북서부 외곽에 있는 대장항문전문병원이며, 저는 암치료보다는 항문직장생리 및 항문직장 양성수술을 주로 관찰하였습니다. 주로 Dr. Vaizey, Tozer, and Miscovic 선생님 수술을 참관하였고, 항문직장초음파는 Dr. Gupta 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정규 수술은 주변 Central Middlesex hospital 로 이전하는 상황이고, 코로나 환자나 중증 수술 환자만 기존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하는 형태여서 초반엔 많이 어수선했구요. 대부분의 양성 수술이 무기한 연기되며 (난치성 치루 및 변실금 환자), 수술이나 외래 검사를 보는 것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신의료기기를 도입한 임상연구도 중단되어서 원래 보고싶었던 인공항문 괄약근 삽입술이나 항문괄약근내 버킹제 주입술 및 변실금 치료용 신경자극술 등을 보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격주로 골반저 질환에 대한 다학제 회의에서 Dr. Vaizey 와 다양한 선생님들의 증례 토론을 접하고, 국내에서 볼 수 없는 video assisted anal fistula treatment (VAAFT) 나 Fistula laser closure (FiLac) 수술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크론 환자의 복잡치루에서 MRI 소견을 기반으로 Dr. Tozer 의 설명을 들으면서 VAAFT 수술을 볼 때가 가장 재미있었던 같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펠로우가 적어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을 동료가 적고, 환자 수술이 취소되는 사례가 늘면서 편도 2시간 가까이 걸려 출근했다 가끔 허탕치고 돌아올 때는 흩뿌리는 비를 보며 “아 서글프다” 라고 한숨 쉬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겨울은 우기이며 낮 3시면 어두워지는데, 하필 Lock down 이 11월부터 진행되어 2021년 4월까지는 영국내 지역간 이동도 어려운 시기였고 수술 참관도 제한이 되어 많이 gloomy 했었습니다. 이 시기에 연구는, 주로 연수 오기 전 rat 실험 (개발한 버킹제를 쥐 항문괄약근에 주사 후 이물반응 및 항문내압 변화 측정) 과 zebrafish 실험 (oxaliplatin 에 의해 유도되는 만성신경독성 기작연구) 했던 결과들을 모아 논문을 쓰는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St. Mark Hospital 전경)

2) 가족과 친구: 출국시 한국에서 첫째 딸아이는 초등학교 6학년, 둘째 남아는 4학년이었기에 연수에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분들은 대부분 “너나 걱정하세요” 라고 하였고, 맞는 말이었습니다. 연수 후반기엔 외국인 친구들 만나러 아이들 혼자 놀러 나갔고, 한국 돌아가기 싫다며 투덜댔으니까요. 아이들과는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이나 운동을 즐겼습니다. 특히 사계절 비가 촉촉히 내리고 겨울 기온도 0도 이상이어서 학교 운동장이 잔디구장이고, 거기서 신나게 축구하며 노는 아이들을 보며, “아 이래서 축구 종주국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거주한 런던 외곽의 뉴몰든은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였고, 다양한 직업을 가진 가족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분들께 저희 가족은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글을 쓰면서도 벌써 그분들이 그립네요. 밤이 되면 집 뒷뜰에 화로놓고 장작을 태우며 아이들과마시멜로를 구어먹거나, 바비큐를 하며 집사람과 참 많이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 시간들은 그간 많이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었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3) 여행: 연수지로 영국을 택한 것은 유럽 여행도 염두에 둔 것이지만, 결국 코로나로 인해 영국 밖을 나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Lock down 으로 인해 영국에서도 이동 제한이 꽤 오 랜 기간 있었기에 많이 다니지 못한 거 같아 아쉬움은 남습니다. Positive thinking을 한다면, English heritage의 예쁜 정원과 고성들은 코로나로 인해 관람객 제한을 해서 오히려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구입한 중고차가 오래된 낡은 wagon 여서 소음이 심하고 언덕을 힘겨워했지만, wales의 A470, Scotland 의 A9 road 에서의 풍경은 지금도 진하게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화려한 런던의 모습이 아닌, 이름 모르는 수많은 호수, 언덕 그리고 공원에서 우리 곁을 그냥 지나다니던 양, 소, 사슴, 백조, 오리 떼 옆에 빨간 돗자리를 깔고 앉아 주먹밥에 사발면 먹던 기억을 우리가족은 더 많이 추억하며 얘기합니다.


(Eilean Donan castle 앞에서)

4) 감회: 사회주의 의료를 실현하고, 우측 핸들로 운전하며, 다양한 인종이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어울려 살아가고, 100년이 넘는 목조집에서 불편하게 살면서도 자기만의 정원을 갖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영국에서의 1년의 삶은 저와 제 가족에게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영국의 음울한 겨울 그리고 긴긴 Lockdown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지만, 그동안 존재감이 없던 “아빠” 그리고 “남편” 으로서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장 다행인 점은, 코로나 환자가 그토록 많은 상황에서도, 보리스 총리께서 학생들만큼은 학교에서 대면 교육을 해야한다는 원칙을 고수해서, 겨울 3개월을 빼고는 아이들이 전면 등교를 하였습니다. 귀국해서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에 힘들어하며 요즘 자주 하는 말은, “아빠 일 관두고 집안일하고 우리 밥이나 챙겨줘” 입니다.

이제 다시 진료, 연구 및 가정 모두에 충실하기 위해 더 노력하며 살고자 합니다.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다시금 느꼈기에, 열심히 일하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오늘도 의료현장에서 부단히 힘쓰시는 선생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보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