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외과
오흥권

본과 3학년 때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는데, 진료과별 실습을 돌고 거기에서 받은 느낌을 몇 자씩 적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정리되어서 글을 썼다기보다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의사 면허를 따고 외과 의사의 길을 걷다가 잠시 시간이 날 때에도 글을 써 보곤 했습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글을 못 쓰고 남이 보기에 좋은 가식적인 글을 쓰기도 했지만, 그 글을 다시 만나면 저를 거기에 비춰 보는 경험을 했습니다. 글쓰기의 축복 중 하나는 스스로를 북돋고 가다듬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내뱉으면 흩어지는 말과는 다르게 글은 형태를 가진 활자로 존재하여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누가 볼지 모르는 글은, 그런 부담감 탓에 늘 어렵게 써지고 힘들게 고쳐지는가 봅니다.

이번에 제가 펴내게 된 책의 제목인 ‘타임 아웃(Time-out)’은 경기 도중 잠시 쉬는 시간의 의미로 쓰이는 스포츠 용어이지만 수술실에서도 공식적인 용어로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수술실에서는 환자를 마취하고 수술 준비를 마친 다음, 절개를 시작하기 직전에 의료진 모두가 분주한 움직임을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환자 이름을 다시 확인하고 예정된 수술 부위와 수술명을 대화로 검토하며 마취와 수술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시간을 갖습니다.

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기본적인 정보를 차분하게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수술 관련 합병증을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도 여러분과 ‘잠시 멈춤’의 시간을 나눴으면 하는 바람으로 펴내게 되었습니다. 멋진 추천사를 흔쾌히 써 주신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과, 책을 사주실 회원님들께도 미리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