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핸드폰으로 공지되는 지난 사진들을 보면서 미국에 갔던 해외 연수시절을 다시 생각해 보곤 한다. 나의 해외 연수시절은 COVID-19의 영향으로 색다른 경험의 시절이었다. 2019년 7월부터 시작된 연수였지만 2020년 연수 중에 COVID-19으로 인한 lockdown으로 외부 활동을 거의 못하면서 이전과 다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나서 보니 변화된 시기조차 감사할 수 있는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먼저 연수를 가기 전 연수지 결정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워 보고 싶었으나 기존에 알던 임상 지식이 외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먼저 연수를 갔던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최은경교수님의 도움으로 김도균교수님이 이끌고 계신 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Integrative Omics & Biomedical Informatics laboratory에 합류할 수 있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 분석을 배우고 싶었고 암과 관련된 multi-omics 분석들도 배우고 싶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었다.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 연수를 가려면 영어 말하기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었다. 전화를 인터뷰를 하거나 토익이나 오픽 시험에서 기준 점수를 넘겨야 하는데 전화 인터뷰는 꺼려지고 시험으로 준비를 해 보려고 하였다. 오랜만에 시험을 위해서 영어공부를 하는데 말하기가 갑자기 향상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오픽으로 기준 점수를 받아서 무사히 서류들을 준비할 수 있었다. University of Pennsylvania가 있는 Philadelphia내에서는 아이들과 같이 지닐 거주지를 구하기 힘들어서 이전에 연수를 오신 선생님들이 주로 지내시는 곳을 선택했다. Bryn Mawr에 있는 Radwyn 아파트에서 연수기간 동안 지냈는데 Philadelphia 로 가는 교통도 나쁘지 않고 아이들 학교도 만족스러워서 잘 지냈던 것 같다. 연수 중에 같은 lab에 합류하신 서울대학교병원 이승미교수님, 성빈센트병원 윤재승교수님도 같은 아파트에서 동네주민으로 지냈다.

연수 초반에 평소에는 해 보지 못할 일들을 하면서 미국 생활을 적응해 나갔다. 새로운 집에서 가구도 조립해 보고 미국 생활에 필요한 운전면허 등 서류 작업 등을 하면서 미국 생활을 배워 나갔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진행하는 방학 영어 프로그램에 보내고 마트에 장 보러 갔는데 갑작스러운 전화가 왔다. 둘째 아이가 몽키바에서 놀다가 떨어지면서 팔이 부러져 응급실로 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이 갑자기 일어나서 경황이 없었다.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낯선 환경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closed reduction으로 치료할 정도이어서 수술은 피할 수 있었다. 미국 병원에서 아이가 치료받는 과정을 보면서 의사가 아닌 환자 보호자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느리면서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절차대로 진료하는 미국 의료 시스템이 답답하기는 했지만 아이가 많이 아프지 않았다는데 감사했다. 현지 의료보험이 아닌 한국에서 들었던 전문직 해외 체류 보험을 가지고 있다 보니 진료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응급 진료는 일단 진행하였지만 후속 진료를 위한local clinic의 외래 진료에 차질이 생겼다. 현지 의료 보험이 없다고 진료를 안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직접 지불을 확인 받고 진료를 볼 수 있었지만 약간의 서러움이 느껴졌다.

Lab 생활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필요했다. Informatics 영역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 하나씩 배우면서 시작했다. 다른 연구원들은 각자의 연구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코딩 분석을 하고 있는데 나만 아주 기초적인 R 코드를 짜느라 씨름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하지만 다른 연구원들이 여러모로 도와주었고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어느 정도 기본적인 분석을 직접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료 영역에서 중요한 연구주제를 설정하는 부분은 의료진의 영역인 것 같다. 특히 의료 지식과 환자를 본 경험은 협력 연구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 같다.

< 김도균 교수님 Lab 멤버들, 가운데: 김도균교수님, 오른쪽 끝: 필자>

< 연구실 내부, 뒷 자리가 연구실에서 쓰던 자리>

< 실험실이 있던 Richards Medical Research Laboratories 건물>

연구실 생활에서 좋았던 점은 새로운 연구 기법과 내용에 대해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고 여러 연구 주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인공지능, GWAS 관련 논문들을 중심으로 매주 journal club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좀 더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매주 있는 brain storming 시간에는 각자가 하고 있는 연구들을 소개하는 시간인데 다른 연구원들이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관심이 있다면 협력연구를 제안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소에도 각자가 하고 있는 연구주제를 가지고 편하게 논의할 수 있어 흥미로운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연수기간 동안 김도균교수님께서 연구들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처음에 연구 주제를 잘 못 잡고 있을 때 연구 방향을 잘 이끌어 주셨고 의사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셨다. 덕분에 지금도 계속 관련 분야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Lab 식구들을 집으로 초청해 주셔서 교수님 집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소중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일상을 같이 할 기회가 적었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들이 많이 생겼다. 아이들의 방과 후 운동을 위해 운전을 하고 운동장 밖에서 아이들을 응원하면서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축구를 하는 동안에는 다른 학부모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가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위해 가족들과 첫 장거리 운전도 해 보았고 겨울에는 올랜도를 방문해서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시 올랜도에서 연수하고 계시던 박성찬선생님 가족과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

<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White Water Walk에서>

그러나 COVID-19 판데믹이 미국에도 도달하면서 생활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미국내 상황들이 안 좋아지면서 모든 활동들이 조심스러워졌고 lab도 대면 활동이 모두 중단되었다. 다행히 온라인 미팅으로 lab에서 하던 연구 활동들은 유지 할 수 있었다. 아이들 학교도 온라인으로 변경되었고 초반에는 아이들 온라인 수업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의 하루 종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아마 그 어떤 때 보다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한 것 같다.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초창기에는 걱정이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적응이 되었다.

거의 집에서만 지내다가 큰 마음을 먹고 국립 공원을 가 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Grand Teton 국립공원을 시작으로 Yellowstone 국립공원을 방문하였는데 아직 판데믹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아주 많지 않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Utah 로 넘어가서 Zion 국립공원과 Bryce canyon도 방문하였는데 거대한 자연 경관에 압도가 되었다. 겨울에는 Grand Canyon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서부 국립공원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지만 국립공원 방문 경험은 큰 인상을 남겨 주었다.

< Bryce Canyon과 Grand Canyon 에서 >

1년 6개월의 연수 기간은 많은 배움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연수를 잘 다녀오도록 배려해 주신 박규주 교수님과 여러모로 지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정승용 교수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연수 조언을 해 주신 유승범 교수님, 모든 업무들을 묵묵히 처리해 주신 김민정 교수님과 진료 공백을 메워 주신 임한기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