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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의사의 디지털 헬스케어 맛보기
고려의대 고려대학교안암병원
2024년 4월 현재 의대 증원 및 필수 의료 패키지와 관련한 이슈가 의료계의 모든 뉴스들을 집어삼킨 탓에 불과 두 달 전에 전혀 다른 세상에 몸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지만 지난 2023년은 제 개인적으로나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차원에서 모두 큰 지각 변동이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작년 초 chatGPT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모든 산업 영역에서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적용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의료 산업 분야 역시 같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 시기에 저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업체 중 하나인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업계 한가운데서 경험하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연구년에 해외연수가 아닌 국내연수를 선택하는 것도 흔치 않지만 외과 의사가 기계나 로봇 공학이 아니라 의료 정보를 주로 다루는 영역의, 그것도 병원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기업으로 연수를 갔다는데 의아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연수 중에 만나게 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그래서, 카카오에서는 뭘 하는 거에요?”였으니까요. 저는 10년 전에 미국의 Mayo Clinic, Rochester, MN에 연수를 한 차례 다녀온 적이 있어서 딱히 해외연수를 한 번 더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고 국내에서 연수를 할 만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2022년 초, 때마침 창사 후 첫번째 MOU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과 맺게 된 카카오헬스케어라는 회사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연구실 속 연구보다는 현장에 바로 적용하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에 주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기업이야말로 현장감 넘치는 배움의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연히 앞으로 중요할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분야에 대해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 연수에 대한 요청 메일을 보냈고 승락을 얻어 2023년 3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연구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카카오 아지트 현관 전경. 아지트 입구에 들어서면 전광판의 카카오 프렌즈가 맞이해 줍니다.]
2021년 11월 카카오 그룹의 사내독립기업(company in company, CIC)의 형태로 시작을 하게 된 카카오헬스케어는 당시 분당 서울대병원의 소아 신경과의 황희 교수님을 CEO로 초빙해 2022년 3월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카카오’라는 회사와는 독립된 별개의 회사이죠. 카카오에서는 이런 산하 회사들을 ‘공동체’라고 부르고 카카오 본사와 함께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아지트’라는 건물에 함께 입주해 있습니다. 카카오라는 부자 아빠(?)가 있지만 카카오헬스케어 역시 어디까지나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신생 회사 특유의 자유로움과 의욕이 넘치는 곳입니다. 카카오헬스케어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메디컬팀인데 CEO인 황희 대표님 이하, 제가 연수할 당시 7명의 내과, 소아과, 가정의학과, 재활의학과, 정신과 전문의가 크루(카카오에서는 직원을 krew라고 해요)로 있었고, 같은 시기에 연수로 온 분당 서울대 안과 교수님 한 분과 다수의 간호사, 물리치료사, 약사, 의무기록사 출신의 크루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겸직이 비교적 자유로운 학칙 덕분에 저 역시 정식 크루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카카오헬스케어 사무실 입구와 내부 전경. 카카오헬스케어의 마스코트 닥터라이언입니다.]
[제 사원증과 책상. 카카오에서는 영어 이름을 써요. 입사할 때 IT 회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케아 나뭇잎 캐노피를 사서 자리에 설치했는데 저 밖에 없었다는…]
제가 연수를 했던 2023년은 대외적인 환경이나 사내 분위기상 다양한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매우 좋은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연수를 시작한 것이 창사 후 약 1년여 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회사 극 초반의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사업 아이템도 결정되어서 모두가 의욕 넘치고 열심히 달리기만 하면 되는 분위기이었거든요. 저는 정식 크루이기는 해도 연수자의 입장이다 보니 업무에 자유로운 편이어서 원하면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카카오헬스케어의 주 사업부 3군데서 진행하는 각각의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근무한 1년 동안에 각 사업부별로 진행하던 3개의 서비스를 모두 런칭하게 된 것은 정말 귀한 경험이자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Unpack Day (2023.5.11). 40여개 상급종합병원 의료정보센터장님들 초빙해서 HRS와 Karechat 서비스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Pasta Connect Day (2024. 2. 2). 마찬가지로 40여개 상급종합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Pasta 서비스와 의료진용 대시보드인 Pasta Connect Pro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연구 플랫폼에 필요한 용어 표준화를 위해 병원별 용어를 SNOMED CT라는 체계와 매핑하는 작업을 가장 많이 했는데 용어들이 어찌나 많은지 나중에는 엑셀 문서만 봐도 울렁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디지털 헬스케어의 접근성과 호환성이 담보되기 위해 가장 기초가 되는 용어와 전송의 표준화가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진행한 사업 중 메디컬팀으로서 유일하게 저만 단독으로 참여한 digital front door (DFD)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쉽게 말해 카카오톡 채널과 챗봇을 이용해 상급종합병원의 진료를 예약하는 서비스입니다. 예약 후 기본 문진, 증상별 진료과 추천, 의료진 검색이나 유의어 DB 등을 만드는 작업과 함께 진료과 및 의료진의 하이라키 설계나 진료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자문을 담당했고 연수가 종료되는 시점에 총 5개의 상급종합병원에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연속혈당측정기와 연동되는 앱의 의료진용 대시보드 개선 작업이라던가, 약물 감시에 대한 실제 환자 치료 근거(real world evidence, RWE) 사업의 대상 질환 선정과 같은 업무 등에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의료 서비스를 설계할 때 고려해야할 기획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부분들, 특히 여러가지 규제들이나 법적인 문제, 기술적 제약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나아가 사업 모델을 설정할 때 중요한 점들에 대해 배우고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정말 좋았던 점은 이윤을 최우선 목표로 해야 하는 ‘기업’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사업 초기의 순수한 느낌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대표님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목표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고, 구성원들의 출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회사라기 보다는 아카데미의 느낌이 컸다는 것입니다. 사내에서 함께 공부를 하거나 학회를 참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병원들과 연구로 연결되는 업무들도 많아서 회사와 내가 함께 성장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현재는 분리되어 독립된 부서가 되었지만 메디컬팀이 초기에 소속되어 있던 사내 연구소에는 신수용 소장님을 비롯해 국내 보건의료정보 분야의 손꼽히는 인재들로 가득해 이들과 일상적으로 나누는 소소한 대화조차 큰 배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작년 한 해 IT 업계의 최고의 화두였던 LLM과 관련한 새로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덕분에 처음 입사해서는 간단한 용어들조차 알아듣지 못해 회의 내내 단어 검색만 하고 있던 제가 어깨너머로 들은 풍월과 나름의 공부들이 쌓여 스스로의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연수기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대구에서 개최된 2023 대한의료정보학회 춘계학술대회. 선행기술연구소 팀원들과 DP (data platform), DT (digital transformation) 팀원들과 함께]
사실 디지털 헬스케어나 카카오헬스케어라고 하는 이름에서부터 벌써 느껴지듯이 가장 양 끝단에 위치한 두 개의 분야를 하나로 묶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느끼게 된 바가 큽니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의학과 최고의 규제를 받는 의료라는 산업에 익숙한 의사들과 디지털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으로 일하는 IT 업계의 사람들이 공통의 목표를 위해 협업한다는 것은 화성인과 금성인이 만나 일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에 디지털이라는 형식을 빌리더라도 우리나라의 헬스케어 산업은 결국 의료보험체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비즈니스 모델면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큰 요인일 것입니다. 때문에 큰 꿈을 가지고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시고 실망해서 떠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의사 면허만을 무기로 생각하고 섣부르게 뛰어들기에는 결코 녹록치 않은 분야이며 혹시 업계에 관심이 있으면 무엇보다 도메인인 의학에 깊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신입사원의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한다고 꼭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든 여정에 도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카카오헬스케어가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응원해 봅니다.
지난 1년간의 경험을 안고 병원으로 복귀한 지금 연수하면서 배운 것들을 현장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지 열심히 고민하는 중입니다. 저희 전공인 외과라는 분야와 디지털 헬스케어는 상대적으로 접점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외과라는 학문 역시 헬스케어의 범주 안에 속해 있고 직간접적으로 헬스케어 분야의 디지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을 때 어떻게 변화에 발맞추고 이끌어 나갈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쉬지는 못했지만 그만큼 보람되고 의미 있는 한 해였다고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라며 연수 생활에 많은 배려와 도움을 주신 황희 대표님과 메디컬팀, 선행기술연구소 크루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내 까페에서 연구소 팀원들과 (왼쪽 위), 카카오프렌즈 키즈와 함께 (왼쪽 아래). 그리고 마지막 출근날 (오른쪽). 메디컬팀에 보드 동기들이 많아서 더 친하게 지냈어요.]
[생일 축하해줘서…감사하긴 한데…부끄…(왼쪽), 회식의 끝은 언제나 단체 사진!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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