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와이, 특히 빅아일랜드의 코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최고의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는 아이언맨 월드 챔피언쉽 대회가 열리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 대회의 참가 자격은 매해 세계 21개국 39개 도시에서 치뤄지는 지역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한 소수에게만 주어진다. 따라서 탑클래스가 아닌 나같은 동호인이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꼭 챔피언쉽으로만 가야하나?' 라는 물음이 들었다. 평범한 철인3종 대회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의문을 품고 찾아보던 중 '하와이 70.3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대회는 일반대회여서 참가신청만 하면 출전 가능하였다. 게다가 그 당시(21년 6월)가 참가접수 기간이어서 앞 뒤 잴 것 없이 부랴부랴 등록을 해야만 했다. '대회 1년 전에 접수를 받다니'라는 의아함이 들었지만 한 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철인 3종대회는 코스에 따라 표준, 풀, 하프로 나뉜다. 표준 코스는 올림픽 정식 종목인 트라이애슬론과 동일하다. 총 거리가 51.5km (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 이며, 숫자만 따서 5150 레이스라고도 한다. 풀 코스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진정한 철인3종 경기로 풀코스 마라톤(42.195km)을 포함하여, 수영 3.8km, 자전거 180km를 달리는 총거리 226km인 정규 아이언맨레이스이다. 마지막으로 하프코스는 풀 코스의 딱 반인 113km (70.3mile)를 달리는 레이스로 숫자만 따서 아이언맨 70.3대회라고도 한다. 그리고 철인3종경기는 남녀 뿐만 아니라 나이대별(보통 5살)로 구간을 나누어 등수를 매긴다.

하와이 대회 신청 후 훈련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고, 본격적으로 많은 국내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결과 10월에 처음으로 참가한 하프코스인 챌린지 군산-새만금 국제철인3종경기 슈퍼파이널에서 개인 최고기록인 4시간 50분 15초의 기록으로 age 2위를 달성하기까지 했다. 그 여세를 몰아 11월에는 산에서 달리는 마라톤이라 불리는 트레일런 대회에 처음 참가하여 50km를 준수한 성적으로 완주하였다. 12월에는 코리아마스터즈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개인 최고인 3시간 12초를 기록하여 2위를 차지하였다.

(챌린지 군산-새만금 대회 피니시, age 2위를 했다)

(제주트레일런 대회에서 아카데미 코치님의 소개로 유명한 여성 철인인 황지호프로와 함께 달릴 수 있었다)

처음 참가해보는 트레일런 대회.
그리고 마라톤과 철인3종경기로 시상대에까지 오르다니...
예전 계단을 오르며 헐떡거리던 나자신과 비교해보자면 일취월장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후,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며 훈련을 등한시하고 생업에 열중할 수 밖에 없었다. 자전거와 달리기는 크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지만, 수영장과 바다를 꼭 가야만 하는 수영이 문제였다.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다보니 어느새 대회가 열리는 6월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마음이 급해져서 시간을 쪼개어 수영장도 다니고 철인 아카데미 스케쥴도 열심히 소화했다. 철인3종에서 수영은 바다수영으로 일반적인 실내수영 경기와는 다르다. 낮은 수온과 파도를 이기기 위해 보온력과 부력이 좋은 전신슈트를 입고 한다. 따라서 평소 바다에서는 항상 전신슈트를 입고 훈련을 하였다. 하지만 하와이 대회에서는 수온이 높은 이유로 전신슈트를 금지하였다. 이는 부력의 도움이 절실한 나같은 수린이에게는 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훈련 걱정과 더불어 대회날짜가 다가오자 자전거를 포함한 이 많은 장비를 가지고 나혼자 하와이를 어떻게 가지? 하는 걱정이 엄습해왔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서울에서 출발하는 팀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내 코가 석자라 무턱대고 연락을 취하였고 같이 출발하기로 하였다. 이 팀은 오클래스라는 서울 소재의 철인3종 아카데미에서 결성되었으며, 이 아카데미는 유명 연예인 뿐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거쳐간 곳이었다. 팀의 리더인 오영환 코치님은 오클래스의 운영자이며 국내 최초로 풀코스를 9시간이내로 주파한 분이다. 또한 하와이 코나에서 열리는 여러 대회에 자주 참가하여 일정 운영에 매우 능숙하였다.
게다가 함께한 팀원들이 아주 이색적이었는데, 한 분은 치과대학병원의 교수님이였고, 한 분은 여자 치과 개업의였다. 이 분들은 치철회라는 치과의사 철인3종 모임에 속해 있다고 하였고 이는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 하와이 호놀룰루를 경유하여 빅아일랜드의 코나공항에 도착을 했다. 코나에는 철인3종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김교문 목사님이 있다. 목사님은 철인3종경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여 매년 한국에서 오는 팀들을 아무 대가없이 서포트해주고 계셨다.

 

(코나 공항에서 하와이안 레이(Lei)를 걸어 환영해주시는 김교문 목사님)

(kailua bay에 있는 championship 출발지를 나타내는 표지판 앞에서)

 

(하프코스인 70.3임에도 불구하고 풀코스 챔피언쉽 기자재를 재활용 해준 덕분에 즐거운 기분을 만끽했다.)

70.3은 하프코스이니 챔피언쉽코스와는 다르지만 코스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자전거 코스는 너무나도 멋져서 답사차 달리는 내내 감탄사만 내뱉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전거 코스 )

혼자 부산에서 올라와 만난 인연들과 훈련을 함께 하며 전의를 불태웠고, 대회 당일 날에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하와이 70.3 대회 모습)

총 참가인원은 1,212명, 나의 age는 130명
나의 대회기록은 total 118등, age 기준 12등
age 기준으로 수영 112등, 자전거 9등, 달리기 9등.
역시 예상대로 수영성적이 나의 발목을 잡았지만, 발목 정도만 잡히고 몸성히 바다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기에 유쾌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태어나서 이 맑은 북태평양 망망대해에서 맨 몸으로 수영을 할 줄이야...
그리고 철인 챔피언쉽. 그 유명한 코나 자전거 코스까지...

수많은 관람객들이 참가자들을 응원해주는 모습도 나에게는 색달랐다.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고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응원의 말을 외친다.
7살쯤 되어보이는 꼬맹이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도로 옆에서 수줍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하이파이브를 해줬고,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 대회가 끝난 후에는 언제 경쟁을 했냐는 듯이 모두가 하나같이 축제 분위기였다. 마치 어릴 적 운동회와 같은 분위기로 삼삼오오 둘러앉아 마시고 먹고 떠들어댔다.

(시상식이 이루어지는 단상 위에 참가자들이 모였다.)

(대회후 축제 분위기의 참가자와 관객들)

프로생활도 하셨던 오영환 코치님은 한 해에도 수 차례 해외 대회에 참가하시는데, 여러 경험담을 듣다보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단순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 아닌 아름다운 자연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대회참가를 겸한 여행이었다. 아이언맨대회는 대부분 관광지 혹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서 열리고 전세계 곳곳에서 개최가 된다. 동남아에서도 개최가 되고 유럽, 미국, 심지어 아프리카대륙에서도 개최가 된다. 해외여행때 학회를 겸해 가듯이 이렇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여행이 될까 싶었다.

이제 내 운동 인생의 방향은 정해졌다. 목표도 뚜렷하다. 언젠가 풀코스를 완주하여 진정한 철인이 되는 것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