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2
EISSN 2384-2776 2026 SUMMER
대한대장항문학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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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P 2025 참관기

경희의대
박윤영



“이모! 나 대학 합격했어. 파리 시테대학이야. 9월에 입학이야.”
지난 봄, 엄마병에 걸려 언니를 무지하게 힘들게 하던 아가가 어느덧 자라 대학생이 된다고 연락이 왔다. 그것도 파리에서. 이번 ESCP를 지나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회에서 KSCP–ESCP Travelling Fellowship 지원 공고가 났다. 여러 가지 이유로 눈앞의 일만 ‘해치우며’ 지내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았다. 잠시 망설였으나 결국 지원서를 제출했고, 감사하게도 Fellowship 선정 소식을 받았다.

Karolinska 대학병원에서
참관 기관을 물색하던 중, ESCP의 Executive Director인 Vanessa McCourt의 도움으로 스웨덴의 Karolinska University Hospital 방문이 확정되었다. Pelvic exenteration 분야의 high-volume center로, 북유럽 외과 수술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던 날 새벽까지도 잡다한 일에 쫓기며 괴로워했지만, 유럽 땅을 밟는 순간 모든 괴로움은 사라졌다. 인천에서의 출발이 지연되어 파리에서 갈아타야 할 스톡홀름행 비행기를 놓칠 뻔했지만, 온몸이 젖도록 뛰어 비행기 문이 닫히기 직전 자리에 앉는 짜릿한 순간도 있었다.

9월 4일과 5일, 이틀 간의 방문에서 나의 호스트는 Christian Buchli 교수와 RAPIDO trial을 이끌었던 Per Nilsson 교수였다. Karolinska 병원은 스톡홀름의 북쪽 Solna와 남쪽 Huddinge 두 지역에 걸쳐 있는데, 내가 방문한 곳은 Solna 캠퍼스였다. 숙소는 병원 바로 맞은편의 Elite Hotel이었고, 특이하게도 호텔 2층에 외과 교수 연구실이 있었다. 병원과의 거리는 불과 몇 걸음. 편안한 환경이었다.




사진1. Karolinska 대학병원 전경

첫날 아침 7시 40분, 외과 의국에 모인 30여 명의 의사들이 당직 보고를 받았다. 전날 오토바이 사고로 pelvic injury를 입은 환자의 응급수술, ileus 환자, duodenal ulcer로 인한 GI bleeding 환자의 입원 보고가 이어졌다. 당직보고가 끝나자 “이제 오프!”라며 활짝 웃는 당직의의 모습은 귀엽고도 안쓰러웠다.

Karolinska 대학병원은 미국의 level 1 trauma center에 해당하는 상급병원이라 중증 외상 환자가 많은 편이었고, 아침 회의에는 trauma team, IBD team, lower GI cancer team이 모두 함께 모여 당직보고를 함께 듣는다. 이후에는 얼마 전 스웨덴 외과학회에서 발표된 주요 아젠다 리뷰가 짧게 진행되었고, 이후 나는 robotic pelvic exenteration 수술을 참관하기 위해 Ali Kiasat, Mirna Abraham Nording 교수와 함께 환자의 임상 데이터를 검토했다.

전신 마취 및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 병원의 시스템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유도 가질 수 있었다. 하루 평균 2~4건의 대장암 수술이 진행되며, cancer team 구성원은 약 12명 정도로 모든 과정이 여유로웠다. 공간도, 시간도, 인력도.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주치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팀이 MDT를 통해 치료 계획을 세우고, 팀이 수술하고, 팀이 입원 치료를 담당한다. 내가 수술한 환자를 다른 팀원이 돌보고, 내가 MDT에서 논의한 환자를 다른 외과의가 수술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실력의 팀이라면 피로도와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식이라 생각되었다.

병원은 새로 지어 깨끗했고, 시설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병실은 1인실이며, 회복실은 ICU 수준의 모니터링이 가능해 수술 당일을 그곳에서 보내고 POD #1에 일반 병실로 전동한다. 병원 6층에는 복부 수술 전용 수술실이 모여 있으며, 다빈치 Xi와 SP를 포함해 총 8대의 로봇 수술실이 있고, 개복 수술실은 따로 운영된다. 신경외과, 흉부외과 유닛은 별도의 유닛에 있다. 스웨덴의 의료 시스템이 세금 기반의 공공 재원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 대학병원 내 복부수술 유닛에 다빈치 로봇이 8대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날 참관한 수술은 선행 항암방사선치료를 받은 prostate invasion을 동반한 low rectal cancer 환자의 pelvic exenteration이었다. Ali Kiasat 교수가 abdominal phase를, Mirna Abraham Nording 교수가 pelvic phase를 각각 집도했고, 상대방이 집도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수술 보조를 하였다.  대부분의 수술은 수술 전담 보조인력 없이 전문의 두 명이 절반씩 역할을 나누어 진행한다. 

rectum mobilization이 어느 정도 끝난 뒤 urologist가 bladder와 prostate을 박리하고 urethra를 절제한 뒤 colostomy와 urostomy를 만들었다. 이후 체위를 prone으로 바꾼 후 perineal phase를 마치고, 마지막엔 성형외과가 unilateral fasciocutaneous V-Y flap으로 회음을 재건했다. 이날은 성형외과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의가 수술에 참여하였는데, 두 명의 전문의로부터 친절하고 여유로운 교육을 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문득 전공의 시절 이석환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right hemicolectomy 집도 기회를 주셨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전공의들에게 그런 교육자인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수술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같은 날에는 고령의 early rectal cancer 환자의 SP를 이용한 transanal excision 수술과 pseudomyxoma peritonei 에 대한 cytoreductive surgery도 함께 진행되었다.

둘째 날에는 당직보고를 겸한 회의를 마친 뒤 회복실에서 전날 수술한 pelvic exenteration 환자의 회복 상태를 확인하고, proximal T colon cancer 환자의 robotic extended right hemicolectomy 수술을 참관했다. 짧은 이틀이었지만, 북유럽식 의료 시스템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쾌적하고 조용한 스톡홀름의 분위기 역시 오래 남았다.



사진 2. Christian Buchli, Per Nilsson 선생님을 비롯한 Karolinska 대학병원 스탭들과 함께 의국에서


ESCP 2025 in Paris

금요일 저녁, 짧은 스톡홀름 관광을 마치고 토요일 오전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파리는 조카가 유학 중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나의 아주 오랜 친구가 프랑스인 남편과 함께 사는 곳이기도 하다. 친구의 집에 머물며 미리 정리해 준 맛집 리스트를 하나씩 클리어 하며 파리지앵처럼 주말을 보냈다.

ESCP 2025는 Palais des Congrès de Paris에서 열렸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보다 커 보이는 메인홀은 청중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학회의 열기가 대단했다. 내 발표는 첫날 오전 두 번째 세션에 배정되었는데, 국제위원회 이윤석 위원장님과 여러 KSCP 선생님들이 참석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학회에서는 IBD, colorectal cancer, benign proctology 등 다양한 주제가 다뤄졌다. IBD 강의 중에는 LIR!C trial의 공동연구자 Willem A. Bemelman 교수의 강연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LIR!C trial의 11년 추적 결과를 발표하며, therapy-free remission 비율이 infliximab군 12%, 수술군 38%임을 보여주어 uncomplicated Crohn’s disease에서 “surgery first” 접근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한편, colorectal cancer의 debate 세션에서는 세 가지 주제에 대한 뜨거운 토론이 이어졌다.

① near complete response 시 TME vs. organ preservation,
② R1 endoscopic resection 후 TME vs. chemoradiotherapy,
③ MSI-H colon cancer에서 surgery vs. immunotherapy.

near complete response 시 TME 하겠다는 응답과 organ preservation 하겠다는 응답의 비율은 거의 비슷했고, 나머지 두 주제에 대한 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외과의 중심의 청중답게, 수술을 하겠다는 응답이 월등히 많았다.

마지막으로, Karolinska 대학병원의 Anna Martling 교수가 keynote lecture로 발표한 ALASCCA trial결과가 특히 인상 깊었다. PI3K pathway 유전자 변이를 가진 대장암 환자에서 저용량 아스피린(160mg)을 3년간 투여한 결과, 재발률이 위약군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HR 0.49–0.42). 아스피린의 항종양 효과는 주로 COX-2 억제에 의한 PGE₂ 감소를 통해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 PGE₂는 PI3K–AKT–mTOR 신호를 활성화해 cancer progression을 돕고, 또한 PI3K 신호가 COX-2 발현을 상승시키는 positive feedback 작용도 보고되어 왔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COX-2를 억제하면 COX-2–PGE₂–PI3K 축이 끊기면서, PI3K 경로에 의존적인(PIK3CA 변이 등) 종양에서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RCT 로 확인한 것이다. 이는 분자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한 정밀 보조요법의 유효성을 보여준 획기적 연구로 평가받을 만하다.

 
사진 3. 학회장 모습 

파리의 여운

학회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과감히 렌터카를 빌려 파리 외곽을 여행했다. 모네의 그림처럼 보존된 지베르니의 정원, 몽환적인 수도원 섬 몽생미셸, 그리고 뤼팽의 바늘이 있는 에트르타까지… 모든 풍경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스웨덴의 기관 방문에서 ESCP 학회, 그리고 여행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허락해 주신 이석환 선생님, 그리고 이현구, 이하영 선생님에게 감사드리며, 무엇보다 귀한 fellowship의 기회를 마련해 준 학회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 4. 몽생미셸 풍경




회차 분류명 제목 등록일자
79 해외연수기 ESCP 2025 참관기 2025-10-16
79 해외연수기 해외연수기 2025-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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