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2
EISSN 2384-2776 2026 SUMMER
대한대장항문학회 소식지
가온누리란? 세상(누리)의 중심(가온데)이란 뜻의 순수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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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외연수기 – UC San Diego

충남의대
김진수


의과대학의 교수가 되는 순간부터 누구나 미국 연수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고 생각한다. 연수를 실제적으로 가는 시기는 발령받은 교실내 상황이나 개인적인 가족의 상황 등을 고려하여 조율할 것이다. 개인적인 배경을 이야기 하자면 내가 의과대학교 외과학교실에 임상조교수로 발령받은 시기는 2010년이다. 당시 교실에는 10명의 교수님들이 계셨다. 내 위로 계시는 교수님 중에는 서열(?) 5번째 교수님이 미국 연수를 계획 중이셨다. 그러니까 최소 5년 이내에는 미국 연수는 갈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또한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될 때 즘 연수가는 것이 아이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내가 임상조교수로 발령 받을 당시 첫 아이가 만 2세였기 때문에 미국 연수는 향후 10년 후쯤 대략 2020년 전후로 가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미국 연수에 대한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던 중 아내가 대학 교수로 발령받게 되었다. 아내 전공은 실내 인테리어 디자인이다. 결혼 전부터 대학교수에 대한 꿈이 있는 것을 알았기에 축하할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미국연수 계획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겼다. 아내가 발령받은 대학교 내규상 안식년이 아니면 국외 연수는 허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의 안식년이 되어야만 내가 미국 연수를 가족과 함께 갈 수 있었다. 아내의 안식년은 2024년이 되어야만 가능했기에 나의 연수 시기는 2024년으로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2020년에 연수를 계획하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의 유행이 시작하던 시기가 2020년이었다. 미국 연수를 오더라도 정상적인 생활도 어렵고 연수에서 배움의 기회도 많이 줄었을 것이다.

2015년 정도 였던 것 같다. 아내의 안식년 시기를 고려해서 2024년에 미국 연수를 가리라는 다짐을 하였다. 또 한가지 2024년을 미국 연수 시기로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다. 2020년에 우리대학에서 세종시에 새병원을 개원하였다. 새로 병원이 오픈하면서 기존 병원에서 근무하던 교수 중 일부가 새병원으로 옮겨야 했는데 외과에서는 내가 새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개원 직후에는 아무래도 미국 연수를 가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여러가지 상황들로 인해 나의 미국 연수는 2024년에 시작하기로 계획하였다.

여러가지 인터넷이나 관련 서적자료를 찾아보면 연수를 시작하는 시점은 2월 이나 8월이 좋다고 하였다. 2월에 시작하면 연수가 끝나고 돌아올 때 아이들이 3월 개학에 해당되어 한국에서의 적응이 좋다고 하였고 8월에 시작하면 미국에서 시작할 때 개학에 해당되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적응이 낫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이미 많이 커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시기이니까 미국에서의 적응에 좀 더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2024년 8월에 미국 연수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미국 연수 시기를 결정하고 난 후 나는 미국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서 생활할 것이냐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선배님들의 연수지를 보면 Cleveland Clinic, Mayo Clinic, MSKCC, MGH, MD Anderson Cancer Center 등을 가셨던 것 같다. 연수 할 기관이나 지역 결정은 연수를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 질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에서 해오던 연구의 심화과정으로 연수지를 결정할 수 있고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refresh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기관과 상관없이 학교나 주변 환경이 좋은 도시를 연수지로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연구를 배운다는 목적으로 기관과 연수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연수지 결정은 가족들의 생활 터전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연수지 결정을 두고 아내와 상의 하였다. 아내는 미국에서 생활하기에 좋은 곳은 샌디에고로 생각하고 있었다. 캐나다 벤쿠버에서도 살고 싶다고 했다. 특별히 관심있는 연구 분야가 따로 있지는 않았고 아내의 선호지역을 최대한 맞추려고 하였다. 그래서 샌디에고와 벤쿠버에서 나오는 논문을 검색하고 검색된 논문의 교신저자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보았다. 한 3-4군데 보낸 것 같은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연수는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샌디에고로 연수를 간 한림대학교 강병모 선생님이 생각이 났다. 강병모 선생님께 카톡으로 인사 드리고 연수하고 있는 곳에 나도 1년 후에 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바로 PI 선생님이신 Hoffman 선생님에게서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줌 미팅 날짜를 잡고 줌으로 인사 후 바로 연수를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나의 경우는 연수시기와 연수지를 미리 결정하고 연수 기관을 거기에 맞춰서 알아보았다. 특별히 관심있는 연구 분야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가족과 함께 1년 외국 생활을 하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강병모 선생님이 계신 lab에서 주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 지 못했다. 다만 첫 줌 미팅에서 Hoffman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methionine addiction이 주 연구 분야이고 미국 연수 오기 전에 연구 분야에 대해 미리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내게 주셨다. 그래서 연수를 오기 전 까지 연구에 대한 계획과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정착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연수기관으로 부터 DS-2019 를 받는 일이었다. 일단 PI가 선정되고 난 후에는 UC San Diego로 부터 DS-2019를 받기 위한 절차는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DS-2019 문서를 메일로 받은 후 이를 갖고 미대사관에 J1 비자를 신청하고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 때가 2024년 1월 이었다. 첫째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였다. 미국에 들어가면 내신 관리에 문제가 생길 터였다. 입시제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어서 미국에 1년 정도 거주하는 것이 대학 입시에 큰 문제가 되는지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내와 함께 이 문제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아이들 입시가 끝난 후 미국 연수를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은 아이들은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하고 가족과 떨어져서 나 혼자 미국 연수를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미국 연수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사는 계기로 삼으려고 했던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래서 이왕 혼자서 미국으로 연수를 가게 된 마당에 연수의 목적을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는 계기로 삼는 것으로 바꾸기로 하였다. 애초에 미국 연수 기관을 정할 때 clinical research 쪽으로는 생각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연수는 주로 참관이 될 것 같아 지루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뭔가 내가 직접 실험을 할 수 있는 lab에서 연수를 하기로 했고 연수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실험 연구를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가족과 함께 미국에 갈 것이냐 혼자 갈 것이냐는 결정을 하느라 2달의 시간을 보냈다. J1 비자를 받기 위한 인터뷰를 3월에 하고 2024년 8월 22일을 출국 날짜로 정했다. 출국 전 준비할 것들은 인터넷 서치를 통해 알아 보았다. 막상 미국 와서 생활하면서 느낀 거지만 집이나 차는 미국에 들어와서 알아봐도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역사가 이민으로 시작해서인지 처음 정착하려는 외국인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인상을 받았고 집 렌탈이나 차 구입과정이 까다롭기는 해도 물건이 없어서 전전긍긍 하지는 않았다. 

요즘 에어비엔비는 휴대폰 하나로 쉽게 예약할 수 있어서 대략 보름 정도 에어비앤비 해 놓고 집이나 차를 알아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경우 한국에서 집, 인터넷, 휴대폰, 뱅킹, 차를 다 알아보려고 하다 보니 막상 계약한 아파트가 별로 맘에 들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봤으면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사진만 보고 계약해서 후회가 된다. 

미국에 도착하고 정착하는데 필요한 아파트, 인터넷, 전기, 자동차, 생활용품 등을 준비하는데 10일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아파트를 미국에 와서 결정했더라도 15일 정도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Hoffman 교수님께 인사 드리고 본격적인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연구실 내부


실험실 연수중인 동료들과 함께한 회식

내가 연수하는 lab은 UC San Diego 캠퍼스에서 독립된 곳이다. 첫 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 벤치를 비롯해서 실험도구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굉장히 낡아 보였다. Lab은 자체 펀드로 운영된다고 하고 3명의 고용인 연구자가 있고 나를 포함해서 4명의 연수 중인 의사가 있었다. 연수를 오기 전 lab 에서는 누구도 내가 무엇을 하든지 관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나 Hoffman 교수님을 포함해서 내가 무엇을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인상을 받았다. 

기본적인 실험 방법은 같이 있는 강병모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알려 주셨지만 내가 여기서 어떤 연구를 해야 할 지 난감했다. 처음부터 연구 주제를 던져 주지도 않았고 Hoffman 교수님은 PubMed에서 methionine addictioin을 검색해서 나오는 논문을 읽어 보라고만 하셨다. 200여 편의 논문이 검색되었고 먼저 리뷰저널부터 읽어 보면서 연구 주제를 어떻게 정할지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세포주를 이용하는 실험이 주된 실험이었다. 

세포주 해동, 배양, 계양, 냉동하는 법을 배우고 half maximal inhibitory concentration (IC50) 구하는 방법, 약물처리 방법 등을 배웠다. 실험 기법을 익히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배운 대로 해봐도 세포주가 잘 자라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핸들링 과정에서 세균이나 곰팡이 감염이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번 실패를 반복하면서 감염 없이 세포 배양과 처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논문을 살펴 보면서 가장 먼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synergistic efficacy를 구하는 실험인 것 같아 이것을 먼저 해보겠다고 PI 교수님께 말씀 드렸다. PI 교수님의 허락을 받고 필요한 약제를 구매 후 첫번째 연구 결과를 미국에 온지 6개월 만에 얻게 되었다. 

클린벤치에서 세포배양 실험 중


마우스 배양실 내부


내가 있는 lab 은 이 전에 이야기 듣던 lab 과는 좀 다른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PI 교수님이 늘 lab에 계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용된 연구원보다도 더 오래 계셨고 주말에도 출근 하셨다. PI 교수님의 연세는 80세 이시다. UC San Diego 외과에 소속되어 계셔도 자체 펀드로 운영되는 lab을 가지고 계셔서 정년이 따로 있지는 않는 것 같다. PI 교수님은 직접 실험을 하지는 않으시지만 실험 결과를 토의하고 논문 검토하시고 최신 저널을 살피시고 줌미팅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시는 일을 주로 하신다. 

미국에서 연수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목표는 새로운 연구를 해보는 것이었는데 이러한 목표를 이루는데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lab은 마우스 실험이 특화된 곳이다. 다른 연구소에서 마우스 실험 의뢰가 자주 들어오고 실제로 수백 마리의 마우스를 관리하고 있었다. 마우스 실험에 참관하고 tail vein injection, tumor implantation, intraperitoneal injection 등 의 실험 기법을 익히기도 하였다.

연수 온 지 6개월 만에 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논문에 게재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연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Tumor targeting bacteria therapy 나 tumor metabolism 같이 생소한 개념도 알게 되면서 이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Hoffman 교수님은 늘 연구소에 계셨기 때문에 연구 디자인 아이디어나 실험 결과에 대한 토론을 바로 할 수 있었다.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면서 연수 오기 전에 잘 이해하지 못했던 실험 연구를 조금씩 이해 할 수 있게 된 점이 이번 연수를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험 연구 논문은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질 않아 결론만 봤었는데 직접 실험을 경험한 이후로는 실험 연구 논문의 방법과 결과를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실험 논문의 추론 전개나 결과 도출의 방법이 임상 연구와는 다른 점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실험 연구와 임상 연구의 차이점에 대한 이해도는 추후 내가 수행할 연구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미국 연수 기간 동안 접한 새로운 개념 중에서 tumor metabolism and environment 가 가장 흥미로웠다. 항암제의 기전은 대부분 암세포의 분열과정을 억제하는 약물의 이용이라고 한다면 암세포의 대사과정을 억제하는 약물의 이용이 tumor metabolism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직은 임상적으로 널리 활용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연구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연수 오기 전에는 특별히 관심 있는 기초 연구 분야가 없었으나 연수 중에 관심을 갖게 되는 기초 연구 주제가 생겼다는 사실 만으로도 미국 연수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연수 기간 동안 했던 다양한 community 활동들


미국에서의 생활은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미국 연수기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가족들과 함께한 행복한 시간’ 과 내가 처한 상황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방안으로 생각한 것이 community 활동이었다. UC San Diego 내에 international student 나 scholar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ESL class, English Conversation Group, Outback Adventure Activity 에 관심이 갔다. 

주중에 일정 시간 동안 ESL class와 English Conversation Group에 참여하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San Diego 주변에는 hiking course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course를 UC San Diego internation student 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맘에 들었다. International Reformed University Fellowship (RUF-I) 이라는 선교단체를 알게 되어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하고 Thanksgiving day, Easter, July 4th 같은 미국 공휴일에 international student 들과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등은 미국에서의 나의 연수 생활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연수기간 동안 다녔던 여행지

연수를 오는 다른 교수님들 처렁 연수 기간동안 미국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아이들 방학기간을 이용해서 한달 정도 나와 같이 체류하였다. 아내와 같이 있는 시간 동안 다닐 수 있는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하고 주로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관광지를 다녔다. San Diego, LA, Las Vegas, 그랜드캐년, 요세미티 공원 등을 다녔다. 미국이 워낙 넓다 보니까 다닐 수 있는 여행지는 많았지만 혼자서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지 않았고 아내와 딸이 방학기간에 잠깐 머무는 동안 캘리포니아 내에서만 여행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거주했다면 캐나다, 멕시코, 미국 동부 지역을 여행했을 것 같긴 하다. 

미국 연수 기간 동안 아프면 안된다는 생각을 늘 했다. 미국 의료비가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진료 받는 프로세스가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게 느리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조깅 저녁에는 아파트내 Gym에서 운동하기로 하였다. 아침 조깅은 미국 오기1년 전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 30분 달리기로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아침에 여유시간이 있어서 조깅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갔다. 주말에는 8km 이상의 장거리 달리기에도 도전해 봤다. 달리는 시간과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마라톤 대회를 참가해 보기로 하였다. 

한국에서 10km 경주에 참가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12km 대회에 참가해 봤다. 마라톤 참가 방식이 한국과는 다르게 인터넷으로 신청해도 배번호 수령은 우편으로 오지 않고 직접 배부처로 찾아가서 수령해야 했다. 만약 미리 수령하지 않으면 대회 당일 오전에 10달러를 더 내고 수령해야 하는 구조였다. 12km 대회는 참가하는 데에 의미 있고 미국에서 달리기 대회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 어렵지 않게 완주를 한 후에 half course, full course 마라톤 대회 참가를 알아 보게 되었다.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하겠다고 이야기 하니까 아내가 먼저 걱정부터 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도 있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면서 보호자도 없는 미국에서 쓰러지면 어떻게 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나름 마라톤 대회 날짜를 맞춰서 개인적인 훈련을 하였기에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내를 설득하였다. 드디어 마라톤 당일이 되었고 5시간 10분이라는 기록으로 완주를 하였다. 풀코스 마라톤 완주 자체가 목표였기에 완주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고 미국 연수 생활 중 경험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달리기 취미를 유지하고 1년에 한번쯤은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참여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풀코스 마라톤 완주의 순간

연수를 계획했던 1년이라는 시간이 아직은 1달이 남은 시점이지만 섭외 홍보위원회 요청으로 나의 해외 연수기라는 제목으로 이글을 쓰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에 연수를 와서 그전에는 대학교수로서 늘 부족했던 연구의 시간이 있었고 체력적으로 부족했던 운동의 시간이 있었으며 일로만 만나던 인간관계에서 좀 더 넓은 community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시간이 없었던 아쉬움은 떨쳐 낼 수 없지만 그래도 아내와는 오히려 전화를 통해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연수의 기회가 있다면 연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결실은 사람들 마다 다를 수 있다. 병원이나 학교, 가정의 상황에 따라 연수 과정의 모습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시간’ 이 연수를 계획했을 때 얻고자 하는 결실이었다. 가정의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두고 혼자서 미국 연수를 오게 되면서 나의 목표는 크게 수정되어야만 했다. 나는 왜 해외연수를 가려고 했는가를 다시 곱씹으면서 해외 연수의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연구를 배우고자 했던 것 이 가정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은 이차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일차적으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 라는 소망이 있었기에 해외 연수의 기회에서 미국을 선택하고 lab을 선택한 것 같다. 연수를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돌이켜 보면 나는 목표가 있었고 이를 이루려고 노력했었다. 연구의 업적이 어느 정도 갖춰지고 한국에 돌아가서 이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고 체력적인 향상이 있었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연구 업적은 미비하고 저질체력에 영알못이긴 하지만 미국에 오기 전 보다는 발전된 나를 보게 된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발전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라는 사실 만으로도 미국 연수의 시간이 개인적으로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고 믿는다.



회차 분류명 제목 등록일자
78 회원 기고문 나의 해외연수기 – UC San Diego 2025-07-31
78 회원 기고문 샌디에이고에서의 연구와 성장 — 가족과 함께한 2년 2025-07-31
78 회원 기고문 해외연수기 2025-07-31
78 회원 기고문 정년 후 제2의 시작: 말레이시아 의사 교육 2025-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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