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2
EISSN 2384-2776 2026 SUMMER
대한대장항문학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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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서 만난 학문과 사람 - KSCP–LSC Joint Symposium 2026 (Vilnius) 참관기

대한대장항문학회 부총무
신루미

 

대한대장항문학회(KSCP)와 리투아니아대장항문학회(LSC)는 격년으로 양국을 오가며 합동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학술 교류를 넘어 서로의 진료 문화와 사회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는 우리 학회가 리투아니아를 방문할 차례였다. 부총무로서 행사를 준비하고 동행한 입장에서, 이번 빌니우스(Vilnius)와 리가(Riga) 일정은 학술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다시 오기 어려운 값진 경험이었다.

 

출발 전부터 쉽지 않았다. ASCRS 학회 일정과 맞물려 KSCP-LSC Symposium에 참석할 상임이사진의 수가 줄었고, 중도 취소도 발생해 리투아니아 측 대장항문학회장이자 조직위원장이신 Prof. Narimantas E. Samalavicius(이하 Naras 교수)에게 변경 메일을 계속 보내야 했다. 강의 연자 섭외 역시 일정 중복으로 쉽지 않았으며, 중동 정세 악화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유가와 환율도 함께 출렁였다. 그럼에도 한국팀은 무사히 빌니우스에 도착했고,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 International Colorectal Research Forum

처음에는 조촐한 심포지엄을 예상했으나, 현지의 리투아니아 동료들과 ISUCRS(International Society of University Colon and Rectal Surgeons) 주요 멤버들이 핵심 강의를 맡은 학술적인 Forum이었다. 양국의 합동 세션은 대장암 수술의 최신 술기부터 직장암의 정밀치료, 중개연구, 분변·면역 기반 바이오마커, 골반저 질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며 알차게 구성되었다.

 

Sessions I & II — Korean Sessions (09:10 – 10:55)

Sessions I & II의 좌장은 Prof. Narimantas E. Samalavicius(Vilnius)와 정순섭 이사장님께서 함께 맡으셨다.

Session I “Surgical Innovations & Techniques”의 문은 연세대학교 조혜정 교수의 ‘Colorectal surgery in the era of robotics’가 열었다. 이어 순천향대학교 임대로 교수가 ‘Minimally invasive surgery for colorectal cancer’를 발표하며 최소침습수술의 현재 위치를 정리하였고, 연세대학교 민병소 학술위원장님이 ‘Surgical principles and techniques for the tailored treatment of right colon cancer’를 통해 우측 결장암에 대한 맞춤형 수술 원칙을 제시하였다. 세션의 마지막은 다시 조혜정 교수가 맡아 ‘Optimal time to surgery after colorectal cancer diagnosis: evidence from a nationwide Korean quality-assessment cohort’를 발표하였다. 한국의 전국 단위 적정성 평가 코호트를 기반으로 진단 후 수술까지의 적정 시점을 검증한 연구로, 한국형 의료 데이터가 갖는 강점을 잘 보여준 발표였다.

 

Session II “Advanced Strategies for Rectal Cancer”에서 나는 두 개의 발표를 맡게 되었다. 첫 번째는 ‘Predicting the unpredictable: a multi-modal AI journey toward personalized neoadjuvant response in advanced rectal cancer’로, 진행성 직장암 환자에서 선행항암방사선치료에 대한 반응을 멀티모달 AI로 예측하고자 한 나의 연구 여정을 소개하였다. 두 번째는 ‘Beyond local excision: the precision of TAMIS in early rectal cancer’로, 조기 직장암에서 단순 국소절제를 넘어선 TAMIS의 정밀성과 임상적 자리매김을 다루었다. 이어 가톨릭대학교 배정훈 교수가 ‘Optimal indication for lateral pelvic lymph node dissection’를 통해 측방 골반 림프절 절제술의 적정 적응증을 정리하며 Session II를 마무리하였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ICRS 때, 아쉬움이 컸다. KSCP-LSC Joint Symposium에서 진행 중인 연구를 소개하는 자리인 줄 모르고 최신 지견 중심으로만 발표했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진행 중인 연구를 짜임새 있게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강의록 제작 도구를 다듬는 데 욕심을 내다가 출국 전까지 발표 자료를 마무리하지 못했고, 결국 공항 라운지에서, 기내에서, 일정이 끝난 호텔 방에서 슬라이드를 마저 완성해야 했다. 해외에서 초록 발표가 아닌 정식 강의를 두 차례 진행한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컸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경험으로 남았다.

 

Sessions III & IV — Korean Sessions (11:25 – 12:55)

커피 브레이크 이후 진행된 Sessions III & IV의 좌장은 Vita Kimasauskiene 교수(Vilnius)와 신응진 교수님께서 맡으셨다.

 

Session III “Research, Technology & Management”에서는 임상·중개·디지털을 아우르는 한국 연구의 폭이 잘 드러났다. 고려대학교 이선일 교수님의 ‘Colonoscopy for postoperative complications’가 수술 후 합병증 관리에서 대장내시경의 역할을 정리하며 세션의 문을 열었다. 이어 서울대학교 전기현 교수님의 ‘AI literacy: integrating ChatGPT into medical research and clinical workflows’는 의학 연구와 진료 현장에 ChatGPT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실용적이고 시의적절한 발표였다. 연세대학교 강정현 교수님의 ‘Development of tumour-infiltrating-lymphocyte–based prognostic biomarker in CRC patients’는 종양침윤림프구(TIL) 기반 예후 바이오마커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였다. 한국 측 발표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오신 Dr. Samar Alhomoud의 ‘Colorectal screening — challenges and recommendations’는 중동 지역의 대장암 검진 현황과 정책적 과제를 폭넓게 다루며, 검진 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한국·유럽 모델과의 차이를 환기시키는 인상적인 강의였다.

 

Session IV “Pelvic Floor Disorders”는 골반저질환을 주제로 이어졌다. 양국의 진료 환경과 환자 특성이 다르기에, 같은 질환을 두고도 접근 방식과 강조점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세션 전체를 돌아보면, 한국 측 발표는 ‘대규모 코호트와 적정성 평가 데이터 기반의 임상 근거’와 ‘AI·바이오마커를 활용한 차세대 정밀의료 전략’이라는 두 축을 분명히 드러냈고, 리투아니아 측은 ISUCRS 네트워크와 유럽 임상 현장에 뿌리내린 풍부한 술기 경험을 보여주었다. 발표가 끝난 뒤에도 좌장 및 청중과의 질의응답이 활발히 이어져, 양국 연구진이 가진 문제의식이 서로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Forum 현장에서는 작년에 ICRS 2025에서 만나 다양한 교류를 했던 Dr. Dulskas, Dr. Kryžauskas 등 리투아니아 동료들도 다시 만나 반가웠다. 다만 영어로 충분히 마음을 전하지 못한 점, 그리고 한국에서 함께 연구를 논의했던 Dr. Poskus와 마주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 빌니우스 — 감자, 그리고 발트의 식탁 


 

 

 

도착 첫날 저녁의 Welcome Dinner는 빌니우스 구시가의 전통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감자 옹심이 안에 고기를 채운 만두 ‘체펠리나이(Cepelinai)’, 돼지 내장에 감자와 베이컨을 채운 ‘베다라이(Vėdarai)’, 사워크림을 곁들인 감자전까지 — 추운 기후와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자라는 감자가 이 지역 식문화의 중심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와 닿았다. 식후주로 권해 받은 리투아니아 전통 약초주의 진한 향과 강한 도수도 인상적이었다.

 

학술 일정을 모두 마친 저녁에는 Gala Dinner가 이어졌다. 빌니우스의 격조 있는 레스토랑에서 풍미 좋은 와인과 함께 코스 요리가 제공되었고, Naras 교수의 세심한 배려 덕분에 양국 참석자들이 격의 없이 어울리는 잊지 못할 저녁이 되었다.

 

3. 빌니우스 구시가와 트라카이 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빌니우스 구시가는 돌길과 파스텔톤 건물, 그리고 맑은 하늘이 어우러진 도시였다. 가이드 투어의 정해진 동선을 따라야 했기에 노천카페에 앉아 한가로이 머무를 시간을 갖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트라카이(Trakai) 성은 갈베 호수(Lake Galvė) 한가운데에 자리한 붉은 벽돌 성으로, 14세기 비타우타스 대공이 크림반도에서 데려온 카라임(Karaim)족의 전통 만두 ‘키비나이(Kibinai)’를 호수 위 유람선에서 맛본 기억이 오래 남는다.

 

 

 

 

 

 

4. 드루스키닌카이 — 토탄 진흙 웰니스 

 

 

 

 

 

 

 드루스키닌카이(Druskininkai)는 미네랄 워터와 치료용 진흙을 활용한 휴양 도시다. 빙하기 이후 형성된 늪지대에서 채취한 토탄 진흙(peat mud)은 휴믹산·풀빅산 등 항염·항산화 효과가 알려진 유기산이 풍부하다고 한다. 프라이빗 룸에서 따뜻한 머드에 몸을 담그자 며칠간의 긴장과 시차가 풀려나갔고, 이어진 미네랄 온천과 사우나는 학회 일정 마지막의 좋은 완충이 되어주었다. 인근의 목조 조각 공원과 모짜렐라 치즈 농장 방문도 잊지 못할 일정이었다.

 

5. 동료들, 그리고 Levgen

이번 일정에는 ISUCRS의 주요 인사들도 함께해, 유럽과 중동 각국의 대장항문외과 의사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었다. 다양한 임상 환경과 진료 문화를 가진 동료들과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은 학회의 본래 취지가 가장 진하게 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트라카이 성에서 길을 잃었을 때 주차장까지 데리러 나와준 한 젊은 동료가 있었다. 며칠 내내 같은 동선을 공유했지만 인사 나눌 기회가 없던 친구였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일부러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늦었지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의 이름은 ‘Levgen(예우헨)’ — 우크라이나에서 온 동료였다. Naras 교수에게 수개월간 로봇수술을 배웠고, 리가에서도 두 달간 연수를 했다고 했다. 쌍둥이를 임신한 아내가 함께 오지 못한 사정, 그리고 자신의 나라가 지금 안전하지 않다는 그의 말은 무겁게 남았다. 이번 여정 동안 어느 자리에서든 러시아의 그림자는 길었고, 귀국 후에도 나는 여전히 Levgen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그는 다음 날 리가로 떠난다는 우리에게 자신이 연수 시절 좋아했던 장소들을 정성껏 추천해주었다.

 

드루스키닌카이에서 진료하는 Dr. Kvedaras는 작년 한국 방문 때 만난 동료였다. 한국팀이 온다는 소식에 그 도시의 호스트로 마중을 나와주었고, 작년의 환대에 대한 감사라며 리투아니아 명물인 호박(amber)으로 만든 선물을 건넸다. 서로에게 기억에 남는 동료가 된다는 것 — 학술 교류가 가져다주는 가장 보람된 결실이 바로 이런 순간임을 새삼 느꼈다.

 

6. 빌니우스에서 리가로 

 

 

 

빌니우스에서 리가까지의 장거리 버스 이동은 끝없이 펼쳐진 노란 유채꽃밭 덕분에 짧게 느껴졌다. 리투아니아에서 유채는 식용유와 가축 사료, 그리고 친환경 대체연료인 바이오디젤 원료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환금 작물이라고 한다. 도착한 리가는 마침 도시 마라톤이 진행 중이라 수천 명의 주자들로 북적였다. Levgen이 추천해준 장소들을 한국팀과 함께 부지런히 둘러보았고, 귀국 전날 저녁에는 며칠간 감자 위주의 식사가 이어진 외과의사들답게 한식당에서 얼큰한 국물로 마지막 만찬을 보냈다. 해가 길어 10시가 다 되어서야 어둠이 내린 리가 거리를 돌아오던 그 시간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7. 마치며

이번 KSCP-LSC Joint Symposium은 단순한 학술 교환을 넘어, 양국이 가진 임상 근거와 술기 경험, 그리고 차세대 의료기술에 대한 관점을 서로 비추어 보는 자리였다. 한국 측 발표가 보여준 ‘대규모 코호트 기반의 임상 근거’와 ‘AI·바이오마커 기반 정밀의료’의 두 축은 리투아니아 동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준비 과정에서 수차례의 일정 변경에도 끝까지 따뜻하게 응해 주신 Prof. Narimantas E. Samalavicius께 깊이 감사드린다. 함께 강의와 일정을 소화해주신 한국 측 연자 및 참석자 여러분, 그리고 행사 기간 내내 한국팀을 세심히 챙겨 주신 리투아니아 동료들에게도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2년 뒤 리투아니아 팀이 한국을 찾을 때 우리도 그들에게 비슷한 환대를 돌려줄 수 있기를 — 그리고 그때 Levgen도 평온한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참관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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